<달과 육펜스> <인간의 굴레에서> 등의 작가이면서 동시에 극작가로서의 인기와 명성을 충분히 향유하던 노년의 서머셋몸은
70세가 되던 해에 또 다른 장편소설 <면도날>을 출간한다. (노년이라고 말했지만 그후로도 약 20년을 더 산다)
1차 대전에서 동료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삶의 의미를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던 래리 대럴과
그의 주변인들 -
현실적이었던 ex약혼녀 이사벨,
속물이었지만 진짜 신사였던 (<인간의 굴레에서>의 밀드레드가 칭송했을 법한) 엘리엇,
고향 친구 그레이,
인생의 불확실성의 가장 큰 피해자라고 할 수도 있는 소피,
의 삶을 작가의 시선에서 관찰하는 내용이다.
서머셋 몸은 남들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선택한 어떤 청년(극중에 래리 대럴로 표현되는)을 추억하고 싶었던 것일까?
인상적이었던 젊은이가 안정적인 것을 넘어 커다란 성공이 확실시되는 삶을 버리고 구도자의 삶을 선택함+몸의 인도철학/유럽백인으로서의 오리엔탈리즘(여성관도 그러하니 인종에 있어서도 그러할 것이다)/아시아/명상 like that에 대한 개인적 동경 등(달과육펜스에서도 나오는.. 물론 거기는 타히티지만)이 이 소설의 시작점이 아닐까 싶다.
내용보다도 가장 먼저 인상에 박혔던 것은 중간 중간에 포착되는 작가의 삶, 타인을 대하는 방법, 화법, 태도 등이다. 작가는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으며 내가 기대한 날카롭지만 푸근하고 관조적이지만 마음따뜻한 그런 사람만은 아니었고, 졸렬하기도 하고 뒤끝도 있고(뒤끝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포스팅을 또 해야겠다) 세속적인 인물이었다. 경찰서에 갈 때 귀찮아질까봐 훈장을 달고 가는 그런 모습. 보나마나 바가지를 씌우는 것이 뻔한 장의사가 제시한 금액을 아무말없이 수표에 적어주면서, 오히려 놀란 모습의 장의사를 덤덤하게 서술하는 그런 모습. 등등
읽고 난 직후에 실망감이 컸다. 생각보다 너무 별로였음.
작가연보를 뒤적거렸다.
<인간의 굴레에서> -1915년 출간
<달과 육펜스> - 1919년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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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도날> - 1944년 출간
달과육펜스, 인간의 굴레에서와 면도날 사이에 도대체 몸에게 무슨일이 일어난것일까?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결국 아무런 답을 찾지 못할 삶의 의미를 찾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래리. 나는 전쟁으로 인해 답이 없는 이 질문에 매여버린 청년을 조금은 답답하게 지켜보았지만, 작가는 왜 그를 기념하는 이 소설을 썼을까? 그가 일흔살이던 1944년에 면도날이 출간되었고, 그보다 30년 정도 전에 서머셋 몸은 인생의 의미에 대한 답을 이미 명확하게 내렸다.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고, 우연과 함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무늬를 만들어가는 과정'
그의 약혼녀였지만 그레이와 결혼했으며 결국, 결국 손에 닿았다고 생각했던 래리를 완전히 잃어버린 이사벨을 추궁하는 후반부에서, 몸은 이사벨의 젊은날의 선택을 너무나 단순하고 잔인하게 압축한다. '니가 래리와 결혼하지 않은 것은 결국 다이아몬드와 모피코트를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사벨이 날려보낸 접시에 맞을뻔하지만 능글능글하게 상황을 덮어버린다. (상황을 모면하는 솜씨가 정말 대단하지만. 그러면서도 여자의 화를 풀기위해서는 사실만 말하면 된다는 첨언까지.)
몇십년전에 자신이 결론지은 그 허망함에 대한 답을 내리고자 인생을 바치는 래리를 보면서 몸은 경외감을 가진것일까?
몸은 로리에게 사랑에는 열정이 필요하다고 말하지만, 성공과 명성이 그 자신의 열정을 식게 만들어버린 것 같다.
스스로도 '다이아몬드와 모피코트'를 포기할 수 없었으며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 또한 그가 선택한 삶일 것.
왜 서머셋몸이 저평가 되는지 궁금했는데,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면도날을 통해 본 그에게는 더이상 필립이나 스트릭랜드, 래리 같은 삶에 대한 애정, 열정, 호기심을 볼 수 없었다.
1. 스티븐킹의 파인더스 키퍼스에는 이런 부분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면 바보 같지 않은 작품들 사이에서 바보 같은 작품들은 잔인하게 도태되지. 자연스러운 진화의 과정이랄까. 그레이엄 그린의 소설은 아무 서점에나 있지만 서머싯 몸의 소설은 그렇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레이엄 그린은?
[작가] 그레이엄 그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 뉴스페퍼민트
"그 대답을 찾기 위해 나는 런던 타임즈의 스타 편집장 에리카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지금 그레이엄 그린은 무인지대(no-man’s land)로 들어갔다고 설명해주었습니다. 이 무인지대는 한 시대의 인기작가들이 헤밍웨이, 디킨즈와 같은 불멸의 거장으로 남기위해 거쳐야만 하는 공간으로 수많은 작가들과 작품을 빨아들이며 그들 가운데 많은 이는 영원히 사라진다고 말했습니다."
2. 면도날은 어느정도 사실일까?
http://the-wanderling.com/footnote03.html
찾긴했는데, 이걸 제대로 읽기에는 내 영어실력과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그리 크지 않다.
뭐 여러가지 정황을 보았을때 <면도날>은 사실 기반일 것이다 라는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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